클림트의 작품은 여전히 핫해!!
안녕하세요. 얌얌스톤입니다.
워커힐 호텔 빛의 시어터 [클림트전]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프에 관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현재 워커힐 호텔 안에 있는 빛의 시어터에서 클림트 작품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구성을 해서 전시를 하고 있는데요. 환상적인 빛과 그래픽으로 관람객들의 미음을 훔치고 있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은 다녀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클림트, 그는 누구?

구스타프 클림트는 제가 좋아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인데요. 아마도 누군가의 거실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예쁜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에곤 쉴레는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푹 빠진 화가 중에 한 명인 데요.
그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작가로 잘 알려져 있죠. 그는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건축 장식 회화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냈죠. 젊은 시절에는 사실적인 회화에도 곧잘 했지만 점점 더 평면적이지만 장식적이고 구성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반항적이면서 회의적 주제 의식을 보여준 작품을 남기면서 명성을 얻은 화가입니다. 다만 그의 시기가 짧았는데요. 20세기에 들어서면 모더니즘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그의 화풍을 따라 하는 화가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오히려 독자적인 화가로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장식화가로 출발했지만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냅니다. 클림트는 14살 때 빈 응용미술학교에 들어가서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습니다. 이후 동류와 함께 공방을 구해서 주로 건축물 벽면에 그릴 작품을 제작했지만, 당시에는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는 사실적인 화풍이 유행이라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죠. 하지만 이후에는 점점 클림트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갑니다.
똘끼 많았던 클림트, 기존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고 선봉에 서지요.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에는 영국, 프랑스 등에서 벌어진 인상파와 같은 진보된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운동에 영향을 받은 클림트는 자신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는 여전히 만연한 미술계의 보수성인 성향에 반발을 하게 되지요. 나아가 반아카데미즘 운동을 펼치면서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깨알상식) 아르누보 의미를 알아보자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0~1910년 사이 유럽 각지와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이다. 흔히 아르누보하면 덩굴식물 모티프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긴 실루엣의 여인 이미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아르누보의 일부에 불과하다. 각국의 예술 중심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아르누보는 세기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일종의 예술운동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이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구스타프 클림트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빈 대학교 대강당의 천장 패널화를 의뢰받은 적이 있습니다. 천장에 '철학', '의학', '법학'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었죠. 클림트는 3점의 그림을 완성시키는데요. 마치 인간이 우주 이치를 알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며(<철학>), 인간은 삶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고(<의학>), 정의보다는 고통과 무질서가 더 가까이 있는 것(<법학>) 처럼 보이는 그림들을 그려 넣은 것이죠. 지금 보면 클림트만의 철학이 잘 스며든 작품이라 볼 수 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렇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그림을 두고 논쟁이 오갔지요. 클림트의 학력을 문제 삼으며 그에게 너무 벅찬 주제라 비난하기도 했고, 교수진 87명은 <철학>을 반대하는 성명까지 냈었죠. 하지만 보라는 듯,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철학>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다만 그 그림은 끝내 대강당에 걸리지 못했고, 새로 교정하라는 제의마저도 단호하게 거절하기에 이르죠.
에로티시즘의 대명사, 에곤쉴레도 큰 영향을 받았지요!
참고로, 그에게 영향을 받은 많은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먼저 에곤쉴레를 들 수 있는데요. 그의 작품을 보면 묘하게 클림트와 닮아 있습니다. 에곤쉴레는 물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만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내게 되지요. 그는 사람의 몸을 왜곡한 형태로 표현을 하면서 아름다운 그림보다는 본질에 집중을 하고, 인간의 민낯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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